"대학가요제에 나가기 위해 대학에 갔다." 퓨즈 창립멤버 김영무군(25ㆍ서울대 서양사학과ㆍ사진)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말했다. 88년에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은 서강대 '무한궤도'를 보고 퓨즈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이번에 6기 후배들을 통해 오랜 꿈을 이뤘다. 퓨즈와 함께 한 6년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인고의 세월이었다고 고백한다. 96년 당시 대학의 음악동아리는 정치성향을 띠고 록음악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때 퓨즈는 순수하게 자작곡을 연주하며 활동하는 음악동아리 시대를 열었다.
김군은 퓨즈활동을 해서 후회되는 점은 없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퓨즈는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게 해줬다. 음악을 배웠고 창조했다. 공부에 방해가 됐다고? 오히려 취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변한다. 요즘은 기업에서 동아리 활동 경력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신세대 부모라 음악활동을 반대하지 않았다. 연습실 보증금 300만원도 부모님께 빌렸다. 2005년 상환 조건이다.
원래 절대음감이 있던 그는 곡을 만들고 여러 종류의 악기를 다루는 데 능하다. 작곡가협회에 등록이 돼 있기 때문에 만약 백수가 되면 직업을 작곡가로 소개해도 된다며 웃는다. 퓨즈는 공연시 반 이상을 자작곡으로 연주하는 것이 원칙이다. 곡이 일정하지 않고 애드리브가 많이 들어간다. 후배들도 작곡솜씨가 뛰어나 만족스럽다.
모르던 사람들이 음악에 대한 열정만으로 모여 그룹을 결성했을 때 가장 기뻤다. 가장 슬펐을 때는 96년 대학가요제 최종예선에서 떨어졌을 때다. 어려울 때마다 달려와주는 친구들굚 후배들을 얻은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졸업반이지만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OB밴드를 만들어 공연에 참가한다. 김군은 "내 인생에 퓨즈가 없었다면 매우 무미건조했을 것"이라고 말한다.